[문구 1]
덕지불수, 학지불강,
문의불능사, 불선불능개,
시오우야
덕을 닦지 않고, 학문을 배우지 않으며,
의로운 것을 듣고도 의롭게 행하지 아니하고,
선하지 않은 것을 고치지 못하는 것,
그것이 나의 근심이다.
[문구2]
부이가구야, 수집편지사, 오역위지.
여불가구, 종오소호.
부유함을 구하여 얻을 수 있다면, 비록 채찍을 잡는 것이라도 할 테다.
만일 구하여 얻을 수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를 것이다.
[해석/적용]
24/7 콘텐츠에 노출되어있고, 그것을 즐기는 시대다.
콘텐츠의 자극은 주로 사람의 욕망, 불안의 2가지 종류로 압축된다.
내 생활에 명확한 효용이 없으나, 이것이 이쁜 것이고 좋은 것이라고 미디어가 말한다.
난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앞으로도 좋은 인생을 살 수 있을거란 믿음이 있으나
경제위기, 환경위기, 빈곤, 낙오의 사례를 보여주며 나 또한 안심하지 말고, 대비하라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말이다.
소비자로서 우리의 생각을 그들(기업)에게 유리하게 바꾸게 만들고,
결정적인 타이밍과 자극적인 메시지를 통해 최종적으로 돈을 쓰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숙명이니...
그러나, 자본주의는 현 사회의 일부일 뿐 전부는 아닐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로 설명되지 않는 것 중 인류가 지금껏 살아오며 이어진 지혜와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의 목표가 만족스러운 순간의 발견과 유지, 불만족스러운 사건의 방지 및 해결이라고 쳐보자.
About 근심/걱정
그런 맥락에서 위의 논어 문구에서 말한 근심과 욕망(좋아하는 일)에 대한 해석을 해보겠다.
돈이 부족한 것, 평판/관계가 안 좋은 것, 나의 영향력이 제한적인 것, 이 3가지가 가장 흔한 근심인데,
재밌는 것은 이는 모두 바꾸기 위해 나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 말고도 외적인 요소(이를테면 운?) 또한 필요하며,
그렇기에 우리가 갈망하거나, 노력하는 것 대비 성사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반면 논어가 강조한 "덕, 학문(배움), 의로움, 선함"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리 개인의 자질~특성이며, 온전히 나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난이도는 차치하고라도)
통장잔고가 바닥을 뚫고, 마이너스로 떨어지는데...
세상이 나에게 관심이 없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먹고, 싸는 것 밖에 없어보이는데...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당신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 극히 제한적인 것이 뭐냐면 바로 본인 스스로를 바꿔, 당신과 연결된 주변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배움을 구하고, 행동을 통해 배움을 탄탄히해보다면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돈으로 돌아올 것이다.
덕을 닦고, 의로움은 행동을 해나간다면 주변인의 시선에 비친 당신 모습 또한 긍정적으로 조금씩 변할 것이다.
본인의 선함을 증대시키고자 노력하는 것, 이는 결국 주변에 이로움을 퍼트리는 것이며
이러한 선한 영향력은 시간이 걸릴 뿐, 누군가는 알게 되며 언제라도 세상에 큰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밖을 보지 말자, 변화는 안에서 부터 시작하고, 그것이 더 확실하고, 큰 변화를 일으키는 지점이 될 것이다.
About 부/좋아하는 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일 사이의 선택 또한 비슷한 견해를 따른다.
하지만, 위 선택사항에 나는 한번 더 시선을 뒤틀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돈을 잘 버는 것과 좋아는 일이 서로 상충되거나 반대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돈을 잘 벌면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 중에서도 돈을 많이 벌 방법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유형이 일반적일 거라는 기대는 과한 욕심일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린 돈을 잘 번다와 좋아한다는 말 안에 숨어진 몇 가지 조건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돈을 잘 번다는 것에는
① 쉬운 난이도 -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과
② 확실성 - 예측가능한 만큼의 돈을 벌수 있다는 것
③ 평균 이상 - 최소 얼마 ~ 최대 얼마가 가늠되는데,
이것이 개인의 기준 or 사회통념 대비 높다는 것
정도가 내포되어 있다.
좋아하는 일이 되려면 어떤 조건이 붙을까?
① 실행 난이도 - 본인의 지식, 경험, 역량에 근거해 할 수 있는 일어야하며,
더불어 다른 선택지 대비 수월하게 할 수록 좋아하는 일이 될 확률도 높아진다.
② 내적 만족도 - 개인의 가치관에 근거해 이에 부합하거나, 최소 큰 충돌은 없어야 일을 좋아할 수 있다.
③ 외적 평가 - 사회, 주변인들 또한 본인의 과업과 그 결과물을 인정해줄 때 얻을 수 있는 만족 또한 빼먹을 수 없다.
어떤가? 분명 돈을 잘버는 것과 좋아하는 일 사이에는 언뜻 반대관계가 보이는 듯도 하다.
그러나, 나는 ["진정" 돈을 잘 버면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고,
돈을 잘 버는 것 중에서도 당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을 고를 수도 있을 거]라 우기고 싶다.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것은 위에서 제시한 돈 잘버는 일과 좋아하는 일의 조건이
사회적인 통념이며, 이 기회를 통해 다른 관점을 적용하고, 유연한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돈을 잘 벌 수 있다.
그러나,
① 높은 난이도 - (시장에 따라 다르겠으나), 좋아하는 일이 겹치는 사람들 간의 경쟁에서
우열이든 독자적인 포지셔닝이든 본인만을 찾게 만들 수단이 있어야 한다.
② 불확실성 - 좋아하는 일이 비제도권에 속한다는 전제하에서 본다면,
난이도에서 본바와 같이, 시장의 변화와 경쟁에서 치이다 보면
앞으로의 수입에 대해 예측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③ Outlier -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최소-최대의 폭 또한 클 것이다. 모 or 도 라는 식이다.
어떤가? 부담스럽지 않은가? 그래서 다들 좋아하는 일로 돈을 잘 벌 것이란 생각을 접는다.
좋아하는 일을 시도하는 것조차, 기본적인 수입을 확보한뒤 하라는 조언이 나온 이유다.
돈을 잘버는 일에서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는 것은?
다행히도 ① 난이도 측면의 두 조건을 서로 일치성을 보인다.
문제는 만족의 근원이 내적(나)인가, 외적(남)인가 하는 것인데...
여기서 우린 한번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많은 소설과 영화, 미디어를 통해 "나만의 꿈을 쫓아 도전한 청춘"이란 슬로건에 지배되진 않았는가?
콘텐츠화되는 "나만의 꿈"이란 것은, 그만큼 희소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는 것이다.
백중 구십오는 "나와 너, 모두의 만족"을 바란다. 그것들의 비중이 서로 다를 뿐이다.
결국, 내적, 외적 만족도 중 양자택일이 아닌 비중배분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적인 평판, 주변인의 인정 또한 우리가 포기해야할 것은 아니다.
다만, 앞서 논어 문구1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확실하고, 근원적인 만족은 내적인 요소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만족감을 주면서,
(당신이 원하는) 사회적인 평판을 만족시키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순서로 보인다.
어렵다.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단순히 보려는 경향이 강한 내게,논어에서 강조하는 중용은 정말 얻기 힘든 경지로 보인다.그럼에도 그 안에 지혜가 있고, 몇천년을 꿰뚫는 가치가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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